6월의 기념일 정리-의병의 날, 환경의 날, 6.10 민주항쟁기념일

배워서 남주자

6월에도 많은 기념일들이 있지만 일부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6월 1일 의병의 날, 6월 5일 환경의 날, 6월 6일 현충일, 6월 10일 6.10 민주항쟁 기념일, 6월 14일 키스데이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6월 1일 의병의 날

1907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한 의병 ⓒ Frederick Arthur McKenzie/wikipedia Public Domain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텐데요, 1907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한 의병 사진입니다. 

 

의병이란 외국의 침략에 맞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저항 조직입니다.

의병의 전통은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의병이라 하면 임진왜란과 20세기 전후의 항일 의병을 말합니다.

의병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때는 조선 임진왜란, 병자호란 시기와 대한제국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초기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의 수는 관군을 능가했으며 관군이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구한말에는 일제 침략에 맞서 제1, 2차 의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제1차 의병 항쟁은 갑오개혁 이후 단발령이 선포되면서 일어났고, 제2차 의병 항쟁은 러일 전쟁이 끝날 무렵 일어나 이후 대규모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의병의 날'은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제정한 법정기념일로, 매년 6월 1일입니다.

2008년 8월 의령군수 등 1만 5586명이 '호국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 2010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고, 2010년 5월 25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2168호)' 개정안을 통해 매년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 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2011년 제1회 의병의 날 기념식이 경남 의령에서 개최되었고, 매년 전국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기념식과 공연 등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6월 5일 환경의 날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한 국제연합(UN) 기념일입니다.

매년 6월 5일로 해양 오염과 지구 온난화 등 다양한 환경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환경보호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1974년 6월 5일 ‘오직 하나의 지구(Only One Earth)’라는 주제로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유엔 환경계획(UNEP)은 1987년 이후로 매년 세계 환경의 날 주제를 선정해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부터 매년 6월 5일을 환경의 날로 정해 관련 행사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6월 6일 현충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6·25 참전용사들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국가기념일입니다.

 

1953년 9월 29일 동작구 동작동에는 6·25 전쟁 중 순직한 국군장병들을 안치하기 위한 국군묘지의 설치가 확정되었고, 정부는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를 발족 후, 이듬해 4월에 <국군묘지 설치법>을 제정해, 군묘지의 운영과 관리를 제도화했습니다.

이 과정 중, 4월 19일에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6월 6일을 '현충기념일'을 공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부터는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부터는 대통령령, 공휴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충일의 제정 이후 이전의 산발적으로 열리던 추모 행사는 국방부 소관으로 시행되었고, 1988년부터는 개별적으로 실시되었던 추념식과 참배행사 모두를 현충원에서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각종 추모 기념식과 함께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과 국민들이 국립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오전 10시 정각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 국민은 1분간 경건히 묵념을 하며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국군장병 및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각 관공서를 비롯하여 각 기업, 단체, 가정 등에서는 조기를 게양합니다.

6월 10일 6.10 민주항쟁 기념일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의 모습 ⓒ Jjw / wikipedia CC BY-SA 4.0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한국 민주주의 도약의 계기가 된 6월 항쟁을 기억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날짜는 매년 6월 10일로, 6·10 국민대회가 전개된 1987년 6월 10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2007년 5월 2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매년 행정자치부 주관으로 전국에서 기념사업을 진행합니다.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니다.

당시 12월에 시행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5공화국의 대통령 간선제에 대한 비판과 직선제 개헌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정권은 국민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거부하고 시국 혼란을 이유로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4.13 호헌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던 중, 5월 18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정권에 의해 조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서울대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해 고문하다 사망케 한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계기가 되었다.

5월 27일 야당과 종교 단체, 재야 세력 등은 민주화 요구 결집을 위해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를 발족했고, 전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던 가운데 6월 9일 시위에 참여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던진 최루탄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6월 10일 국본은 권력에 의한 고문과 불법 연행 등의 추방과 진상 규명, 4·13 호헌 무효화 등을 요구하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 조작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6·10 국민대회)’를 열었습니다.

같은 날 서울과 광주, 부산, 대전 등 전국 20개 이상의 도시에서 6·10 국민대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학생과 시민들을 중심으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

 

6·10 국민대회 이후 전국에서 거의 매일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26일에는 전국 30여 개 이상 도시에서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여해 전두환 정권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결국, 6월 29일 노태우가 민정당 대표로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선거법 개정, 김대중 사면 등을 공식 약속하였습니다.

6월 항쟁은 학생과 노동자, 농어민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해 대통령 직선제를 끌어낸 민주화 운동으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시민운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월 14일 키스데이

키스데이는 연인들이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뜻에서 키스를 나누는 날입니다.

매년 6월 14일에 기념하지만, 키스데이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는 2004년 '사전 등재어'로 포함되었습니다.

 

이상 6월의 기념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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